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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서당

그령58 2008. 4. 3. 11:32

“붕어빵 공부 싫다” 산골 서당의 실험 [중앙일보]

폐교에 ‘조선시대 학교’열어 … 서당 거친 60여 명 모두 대학 가
보은 회인서당의 대안 교육

지난달 말 봄을 맞아 야외수업을 나온 회인서당 이상규 훈장과 학생들이 서당 인근 야산에 있는 담벼락에 나란히 걸터앉아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회인서당에서 이상규 훈장이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청원~상주 고속도로에서 회인IC를 나온 뒤 대청댐 방면으로 10분쯤 가다 보면 충북 보은군 회북면이란 마을이 나온다. 10가구밖에 살지 않는 오지의 작은 동네다. 흔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조차 없다. 하지만 마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붉은 황토 빛깔로 단장한 아담한 ‘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회인서당’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회인서당에선 이상규(50) 훈장의 선창을 따라 “박문약례(博文約禮·널리 학문을 닦아 사리에 밝고 예절을 잘 지킴)~, 박문약례~”를 읊조리는 학생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실 문을 열자 홍현두(12)군이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굽히는 ‘읍(揖)’으로 인사를 건넸다.

현두는 4년 전 누나 심두(16)양과 함께 서당에 들어와 기숙하고 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현두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했다. 하지만 요즘은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현두는 중국어 고전 번역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현두 어머니 정경희(42)씨는 “획일적인 학교 교육과 학원에 찌든 아이들 보기가 안타까워 자유롭게 공부해 보라는 뜻에서 서당에 보냈다”며 “‘붕어빵 아이’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걷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6세 어린이부터 30대 대학원생까지 다양=회인서당에는 현재 대학생 9명, 중·고등학생 11명, 초등학교·유치원생 9명 등 모두 30명이 있다. 막내 윤지은(6)양부터 대학생 송신주(23·여)씨, 대학원생 김인규(30·성균관대 한문학과)씨까지 섞여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형·누나로 부른다. 살던 지역도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각양각색이다. 학교가 싫어 들어 온 아이, 부모를 따라 중국 생활을 하다 귀국한 아이, 한의학과 교수 자녀 등 입당한 사연도 다양하다. 교사는 훈장과 윤나자(39·여)씨 단 두 명. 학생들은 이들에게서 한자와 중국어를 배운다. 천자문을 떼고 나면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삼경(시경·서경·역경) 등 중국 고전을 원어로 익혀야 한다. 공부의 원칙은 자습. 입당 후 훈장이 천자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가르쳐 주면,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래도 4~5년쯤 공부하면 사서를 줄줄 외고 뜻풀이를 할 정도의 수준에 오른다. 학생들은 매년 한 차례 중국으로 현장 실습을 간다. 중국 문화를 접하고 중국어도 배우기 위해서다.

◇서로 가르치고 배워=이 훈장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면서 인성을 키우도록 하는 게 목표”며 “일종의 기성 교육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이라고 말했다. 서당에선 정해진 학제도 없고, 수년을 공부해도 정규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은 동생들에게 영어·수학을 가르쳐 주고, 자신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지도를 받는다. 필요한 교재는 별도로 구입하지 않고 대물림해 쓴다.

서당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돼 초등학생은 오후 9시, 중·고등학생은 10시에 불을 끄고 취침한다.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지루함을 모른다. 공부가 힘들 땐 서당 인근의 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학과 주말은 정해진 게 없다.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설·추석 명절에 휴가를 얻어 집에 간다.

지금까지 서당을 거쳐간 학생은 60여 명. 모두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입학 자격은 따로 없다.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사이 좋게 지내면서 공부하면 그만이다. 이런 서약을 하고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퇴출된다.

글=신진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회인서당=기숙형 서당. 한자와 한문·중국어를 가르친다. 본래 충남 계룡에 송양정사라는 이름으로 60여 년을 이어오다 2004년 보은으로 옮겨오면서 이름을 바꿨다. 고 서암 김희진 선생의 수제자인 이상규 훈장이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터를 잡았다. 건물 개조비는 서암의 제자로 충북 진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연만희(55)씨가 맡았다. 6000여㎡의 대지에 강의동·기숙동·체육관 3개로 구성됐다. 운영비는 학부모 모임에서 매달 돈을 걷어 충당한다. 학부모들은 누가 얼마를 내는지 모른다고 한다. 여유가 있으면 많이 내고, 부족하면 덜 낸다.